4.3항쟁의 아픔을 간직한 <4.3평화공원>
제주도를 가면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 4.3항쟁 기념관이었다.
마침 10년만에 제주도 갈 기회가 생겨 <4.3 평화공원>을 찾았다.
사실 80년대 중고등학교 시절만 해도 4.3항쟁은 4.3폭동으로 교과서에서 간단히 언급되던 시절이었다. 90년대 초반 대학을 다니면서 비로서 4.3항쟁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다.
대한민국 현대사에 가장 끔찍한 민간인 학살과 비이성이 지배하던 그 시절 우리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야기다.
<제주 4.3사건>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 서청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독선거, 단독정부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라고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은 정의하고 있다.
역사를 바로 알아야 다시는 이 같은 끔찍한 만행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리무진 버스 기사아저씨께서 기사생활 십수년 동안 제주 관광일정 중에 <4.3 평화공원>을 찾는 일행은 처음이라 하신다. 본인 할아버지도 이때 돌아가셨다고 한다.
제주도를 찾는 많은 사람들이 꼭 한번쯤 들렸으면 하는 바램이다.
기념관 로비에 들어서면 각종 팜플렛과 책자를 받아 볼 수 있다.
전시실 입장전 영상관에서 15분 정도 영상물을 관람할 수 있다.
전시실은 1관 역사의 동굴, 2관 흔들리는 섬, 3관 바람타는 섬, 4관 불타는 섬, 5관 흐르는 섬, 6관 새로운시작, 그리고 특별전시관과 다랑쉬굴로 구성되어 있다.
4.3평화공원 홈페이지 <사이버 기념관>을 참고하면 도움이 된다. (☞바로가기)
제주 4.3항쟁의 인명피해는 2만5천에서 3만명, 제주도민의 1/9가 희생당했다고 한다.
그 중 남자 희생자가 80% 정도. 그래서 제주도에는 돌, 바람, 그리고 여자가 많다.
군사정부 내내 금기시 되었던 4.3사건은 문민정부를 거쳐 김대중 대통령이 2000년 1월 <제주4.3특별법>에 서명함으로써 정부차원의 진상조사가 시작되고 희생자들에 대한 명예회복 조치가 진행되었다.
2003년 10월 15일 4.3사건의 진상을 담은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보고서가 확정됐다. 10월 31일 노무현 대통령이 제주도를 방문해 진상보고서에 근거해 국가공권력에 의한 대규모 민간인 희생 사실을 정부가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사과했다.
전시실안에는 아트워크 작품 다수가 전시되어 있다. 아래는 고길천 작가의 <죽음의 섬>. 23개의 조각된 형상들이 배치되어 있다.
전시관 마지막 관. 관람소감문을 붙일 수 있다.
전시관을 빠져나오면 위령탑으로 향하는 길이 있다. 위령탑 주위에는 희생자들의 각명비가 있다. 각명비는 희생자들의 이름을 새긴 비석이다. 4.3 당시 희행자들의 성명, 성별, 당시연령, 사망일시 등이 간결하게 기록되어 있다.
위령탑은 대립의 극복과 통일을 상징하는 상생의 2인상과 제주인을 상징하는 중앙조형물, 평화의지를 기원하는 화해의 원형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 밖에도 4.3평화 공원에는 몇가지 조형물들과 위패봉안소, 유해봉안관 등이 있다.
개관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매월 첫째/셋째 월요일은 휴관일이다.
관람요금은 무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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