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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 등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동원 관련 사진과 기록물



국가기록원이 일제강점기때 강제동원된 조선인의 피해를 여실히 보여주는 문서와 사진기록물을 공개했다. 이들 기록물은 서남한국기독교회관으로부터 기증받은 것으로 군함도 사진 등을 포함한 6000여점에 이른다. 


특히 기증받은 기록물은 일본 내 강제동원 연구자로 잘 알려진 하야시 에이다이가 수집하거나 직접 생산한 기록으로써 1944.8~1945.9월에 걸쳐 메이지 광업소 메이지탄광이 생산한 ‘노무월보’의 당시 조선인이 처한 혹독한 노동 상황과 당시 아소 요시쿠마탄광 갱도사고의 보도내용도 담겨있다. 


또한 하야시 에이다이가 직접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군함도 관련 사진 여러 점 중에는 조선인이 수용되었던 시설등도 공개되어 있다. 


다음은 국가기록원이 일부 공개한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관련 기록물 사진이다.

 

▲메이지광업소 메이지탄광 노무월보(1944년 8월)

 

 


 ▲메이지광업소 메이지탄광 노무월보 내용(위 사진의 실선 부분) 중 조선인 광원들의 이입현황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이입반도광원이동(移入半島鑛員異動)> 등 현황(1944년 8월)

 

 

▲아소 요시쿠마 탄광에서 발생한 화재사고를 다루고 있는 후쿠오카 일일 신문(1936년 1월 27일)

 


▲군함도 전경

 

 

▲군함도 : 채굴한 석탄을 씻는 세탄장(洗炭場)

 

▲군함도 - 신사(神社) 및 초소(哨所)의 모습

 

 

 

 ▲군함도 - 조선인 400명이 수용되었던 시설




▲군함도 - 석탄 운반선이 정박했던 장소

 

 

 ▲군함도

 

▲군함도

 

 

▲군함도



▲군함도

 

 

▲군함도

 

 



▲군함도

 

 

▲군함도

 

 


▲군함도

 

 

▲군함도

 

 



▲군함도

 

 

▲군함도

 

 


▲군함도



▲군함도

 

 



▲군함도

 

 

▲군함도

 



 강제동원 피해 사실을 증언하는 유족

<미츠비시(三菱) 사키토(三菱 崎戶島) 탄광>  “부친은 낮에는 산속에 숨어 있고 밤이 되면 집에 돌아와 농사일을 했다. 그때 면 순사에게 체포되어 그대로 연행된 후 1944년 면사무소로부터 병사했다는 통지를 받았다. 모친은 갑자기 가출하고 나는 친척에게 맡겨졌다. 부친의 유골은 전후(戰後) 동료가 가지고 돌아왔다”고 증언했다.

 

 

 강제동원 된 광부들이 도망가도록 도왔다고 증언하는 일본인 노부부

<도치기현 아시오(足尾) 마을> “아시오 구리광산 고타키(小滝) 갱의 조선인 광부가 도망을 오면 그들을 숨겨주고 주먹밥을 들려주어 달아나게 했다”고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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